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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로스 인문학

달력 앞에서 멈춰선 당신에게: 기일을 '기억의 축제'로 바꾸는 법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이전과는 다르게 느끼곤 합니다. 평범하게 흐르던 숫자들이 특정 날짜 앞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찌르는 경험, 아마 펫로스를 겪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느껴보셨을 거예요.

어느덧 달력 한 구석에 표시된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면, 불안하고 시린 마음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은 그 무거운 '기일(忌日)'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아이와 나만의 '기억의 축제'로 바꿀 수 있을지,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함께 나누어보려 합니다.

기일을 기억의 축제로 바꾸는 법


1. 왜 다시 아플까? '기념일 반응'의 심리학

시간이 꽤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기일이 다가오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기념일 반응(Anniversary Reaction)'**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뇌는 특정 날짜와 계절, 그때의 공기를 기억합니다. 슬픔이 다시 찾아온 것은 당신의 치유가 퇴보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마음이 여전히 그 아이를 뜨겁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 슬픔을 "아직도 못 잊었나"라며 자책하기보다, "내가 이만큼이나 너를 사랑했구나"라고 인정해 주는 것에서 치유는 시작됩니다.

2. '기일'을 '기억의 축제'로 재정의하기

한자로 기일(忌日)의 '기(忌)'는 '꺼리다, 삼가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슬프고 조심스러운 날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이 날은 육체적 이별을 넘어 '영원한 유대'가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날을 단순히 슬퍼하는 날이 아닌, 아이가 남겨준 사랑의 유산을 기리는 '축제'로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축제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와 내가 공유했던 기쁨을 다시 불러오는 의식(Ritual)이면 충분합니다.

"죽음은 생명을 끝내지만, 관계를 끝내지는 않는다."

— 미치 앨봄(Mitch Albom)

3. 슬픔을 빛으로 바꾸는 우리만의 루틴

기일의 그림자에 잠기지 않기 위해, 나만의 작은 의식들을 만들어 보세요.

  • 하늘로 보내는 편지 한 장: 지난 1년 동안 아이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리고 아이 덕분에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적어보세요.
  • 아이가 좋아했던 '그것' 준비하기: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간식을 준비하거나, 자주 걷던 산책길을 천천히 걸어보세요. 아이의 빈자리를 응시하기보다 아이와 함께했던 '공간'과 '취향'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 사랑의 확장 (기부와 나눔): 아이의 이름으로 작은 나눔을 실천해 보세요.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생명에게 흘려보낼 때, 슬픔은 비로소 숭고한 에너지로 승화됩니다.

달력의 숫자는 힘이 없습니다

달력의 숫자가 우리를 아프게 할 수는 있지만, 우리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기일은 아이가 죽은 날이 아니라, 아이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살기로 약속한 날입니다.

이번 기일에는 슬픔에 압도되기보다,

아이가 선물해 준 추억의 페이지들을 하나씩 넘기며 나지막이 인사해 주는 건 어떨까요?

"나에게 와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내 세상은 여전히 따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