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떠나고 남긴 존재의 빛
[ '가졌던 것'의 상실과 '사랑했던 것'의 영원성]
우리는 아이를 '잃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관점에서 보면 상실은 오직 '소유'의 영역에만 해당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를 소유물로 여겼다면 사라진 것이 맞지만, '존재'로서 사랑했다면 아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며칠간의 공백 끝에 우리가 다시 아이를 추억하는 이유는, 아이가 내 삶의 '존재'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존재 양식으로서의 사랑]
소유 양식의 삶은 대상이 곁에 없으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존재 양식의 삶은 그 존재와 나누었던 가치와 감정을 내 안에 내면화합니다. 아이는 떠났지만, 아이가 당신에게 가르쳐 준 '기다림', '편견 없는 다정함', '현재에 집중하는 법'은 당신의 인격 안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제 아이는 당신의 밖이 아니라 당신의 '안(Interiority)'에서 살아갑니다.
[상실 이후의 새로운 자아]
며칠간 글을 못 썼던 시간 동안, 당신은 아마도 '아이 없는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는 새로운 자아와 마주했을 것입니다. 그 자아는 이전보다 연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타인의 아픔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부드러운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실이 우리에게 주는 아픈 축복입니다.
[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글은 잠시 멈출 수 있지만, 당신의 사랑은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오늘 다시 쓴 이 글은 당신의 존재가 아이의 사랑으로 인해 한 뼘 더 자라났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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